연일 이어지는 아프간에 억류된 이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참담한 어제의 비보를 접하면서, 아래 동영상을 다시 보면서, 비통함, 안타까움 그리고 갑갑함이 마음을 거듭 거듭 메웁니다. 어떤 말이 위안이 될까요? 혹자는 위험한 곳에 가게 한 선교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지금으로선 어찌할 도리 없이 지켜보면서 '범종교적'인 구원이 이뤄지기를, 그래서 남은 자 모두 무사귀환하기를 기도하는 마음 밖에요. 기도하는 마음을 담아, 시 한편 소개합니다. 시인 정호승의 <<서울의 예수>>(1982)에 수록된 "시인예수"입니다. 시인이 노래한, "절벽 위에 길을 내어 길을 걸으며", "날마다 사랑의 바닷가를 거닐며/ 절망의 물고기를 잡아 먹는 그"가 지금 우리 모두의 마음에 켜 있는 "인간의 등불"이 아닐런지요. 그를 예수든, 부처든, 또 마호멧이라 부르던 간에 말입니다.
시인예수(정호승)
그는 모든 사람을
시인이게 하는 시인.
사랑하는 자의 노래를 부르는
새벽의 사람.
해 뜨는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고요한 기다림의 아들.
절벽 위에 길을 내어
길을 걸으면
그는 언제나 길 위의 길.
절벽의 길 끝까지 불어오는
사람의 바람.
들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용서하는 들녘의 노을 끝
사람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와하는
아름다움의 깊이.
날마다 사랑의 바닷가를 거닐며
절망의 물고기를 잡아 먹는 그는
이 세상 햇빛이 굳어지기 전에
홀로 켠 인간의 등불.
시인예수(정호승)
그는 모든 사람을
시인이게 하는 시인.
사랑하는 자의 노래를 부르는
새벽의 사람.
해 뜨는 곳에서 가장 어두운
고요한 기다림의 아들.
절벽 위에 길을 내어
길을 걸으면
그는 언제나 길 위의 길.
절벽의 길 끝까지 불어오는
사람의 바람.
들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용서하는 들녘의 노을 끝
사람의 아름다움을 아름다와하는
아름다움의 깊이.
날마다 사랑의 바닷가를 거닐며
절망의 물고기를 잡아 먹는 그는
이 세상 햇빛이 굳어지기 전에
홀로 켠 인간의 등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