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결혼은, 미친 짓이다>>(이만교 2000)를 토대로 유하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상영된 2002년 당시 '여성관객이 뽑은 2002년 최고의 영화 2위'에 선정되었습니다. 그 근거는 "여성의 욕구를 솔직히 표현하고,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잘 드러냈을 뿐 아니라, 대안적 여성상을 보여준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합니다.
연희(엄정화)는 조건 좋은 의사와 결혼하고, 사랑하지만 물신화된 결혼제도 속에 함께 들어서기에는 경제력이 '부족한' 남자와 또다른 '신혼' 생활을 감행하면서 이렇게 말하죠.
시를 가르치는 영문과 강사인 준영(감우성)은 세속화된 결혼제도와 현실을 냉소하면서 독신으로 살고자 합니다. 선 본 남자를 두고 고민하는 연희에게 "일단 나를 비롯해서 가난한 자식들은 빼."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세속화된 결혼제도 자체에 대한 냉소 뿐 아니라, 그런 결혼시장에서 자신이 내놓을만한 조건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자조와 일종의 자기 방어도 읽힙니다.
준영이 강의하는 형식으로 이 영화에는 두 편의 영시가 소개됩니다.
먼저 소개되는 시는 T.S. 엘리엇(Eliot,1888-1965) 의 'J. 앨프레드 프루프록의 사랑노래(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인데, 소심하고 자의식이 강해 자신의감정을 고백하지 못하는, 한 중년 남자의 내적 독백을 들려줍니다. 시의 화자는 "정수리 부분에 머리가 빠지고(With a bald spot in the middle hair)" , 일상을 작은 커피 스푼으로 재듯이("I have measured out my life with coffee spoons) 사는 중년의 남자이지만, 이 시를 쓸 때 엘리엇은 23세의 청년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이 시는 맞선 본 날 두 사람이 함께 여관에서 밤을 보낸 다음 장면에 나옵니다.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충실하게 자유로이 사는 듯하지만 준영 역시 '사랑'하는 여자에게 프로포즈 하는 일은 프루프록에게 만큼이나 "버거운 문제(an overwhelming question)"이고, 볼품없는 자신의 외모가 여자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를 생각하는 프루프록의 자의식은 '별 볼일 없는' 자신의 처지가 결혼 시장에서 어떻게 비칠까를 생각하는 준영의 자의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사건을 반추하고 심정을 토로하며 영화 전체를 이끄는 준영의 나레이션은 자기 방어와 자조를 함께 내보이는 프루프록의 내적 독백과 겹쳐집니다. 또 하나 이 강의가 끝나자 마자 한 여학생이 따라 나와 준영에 대한 관심을 드러냅니다. 그 여학생을 바라보는 준영의 눈빛은 좀 복잡해 보입니다. 다소 도발적이기까지 한 그녀에게서 '수많은 연희들'의 과거를, 그녀의 미래에서 '수많은 연희들'의 모습을 읽은 건 아닐까요.(장시여서 일부만 소개합니다.)
두 번 째 소개 되는 시는 존 단(John Donne)의 '벼룩(The Flea)' 인데, 이 시는 17세기 형이상학파 시(The Metaphysical Poetry)의 특징인 기발한 착상과 비유를 사용해서, '정조'를 지키려는 연인을 유혹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이 시가 소개되는 장면은 연희가 의사와 결혼한 직후입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연희의 제안과 도움으로 준영의 독립된 공간을 만들고 '주말 부부'처럼 보이는 삶을 살게 되지요. 굳건한 '순결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을 담은 이 시가 인용되는 맥락은 연희의 이중생활이 가부장적 결혼제도에 대한 도전을 담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시 에서 남성 화자는 '그대와 나의 피'를 포식하여 배가 불룩한 벼룩 안에는 새 생명이 잉태되었으니, 벼룩은 "우리의 결혼 침상이자 결혼식을 올린 사원"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여자를 유혹합니다. 하지만 여자는 '허튼소리'라는 듯, 남자 눈 앞에서 벼룩을 손톱으로 눌러 죽이고, 손톱을 자주빛으로 물들입니다. 그에 질세라 남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연희(엄정화)는 조건 좋은 의사와 결혼하고, 사랑하지만 물신화된 결혼제도 속에 함께 들어서기에는 경제력이 '부족한' 남자와 또다른 '신혼' 생활을 감행하면서 이렇게 말하죠.
"날이 갈수록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아. 그냥 언젠가 네가 말한 것처럼 두 개의 드라마에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뿐이야. 그래서 남들보다 약간 바쁘게 살아가는 듯한 느낌이야."결혼과 사랑을 분리하면서, 연희가 만든 또 하나의 방, 준영의 자취방에서 연희가 찾은 것은 무엇일까요?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그녀가 여전히 결혼의 틀 속에 있음을 봅니다. 상품화한 결혼이 더 이상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 결혼에 대한 판타지를 재현하려는 듯 합니다. 하지만 파국을 맞을 듯 다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어느 함박눈 내리는 날 준영의 옥탑방을 다시 찾아 닫힌 문을 여는 연희의 뒷 모습을 비추는 엔딩장면은 이 이중 생활이 던지는 문제의식을 환기시킵니다.
시를 가르치는 영문과 강사인 준영(감우성)은 세속화된 결혼제도와 현실을 냉소하면서 독신으로 살고자 합니다. 선 본 남자를 두고 고민하는 연희에게 "일단 나를 비롯해서 가난한 자식들은 빼."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세속화된 결혼제도 자체에 대한 냉소 뿐 아니라, 그런 결혼시장에서 자신이 내놓을만한 조건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자조와 일종의 자기 방어도 읽힙니다.
준영이 강의하는 형식으로 이 영화에는 두 편의 영시가 소개됩니다.
먼저 소개되는 시는 T.S. 엘리엇(Eliot,1888-1965) 의 'J. 앨프레드 프루프록의 사랑노래(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인데, 소심하고 자의식이 강해 자신의감정을 고백하지 못하는, 한 중년 남자의 내적 독백을 들려줍니다. 시의 화자는 "정수리 부분에 머리가 빠지고(With a bald spot in the middle hair)" , 일상을 작은 커피 스푼으로 재듯이("I have measured out my life with coffee spoons) 사는 중년의 남자이지만, 이 시를 쓸 때 엘리엇은 23세의 청년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이 시는 맞선 본 날 두 사람이 함께 여관에서 밤을 보낸 다음 장면에 나옵니다.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충실하게 자유로이 사는 듯하지만 준영 역시 '사랑'하는 여자에게 프로포즈 하는 일은 프루프록에게 만큼이나 "버거운 문제(an overwhelming question)"이고, 볼품없는 자신의 외모가 여자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까를 생각하는 프루프록의 자의식은 '별 볼일 없는' 자신의 처지가 결혼 시장에서 어떻게 비칠까를 생각하는 준영의 자의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사건을 반추하고 심정을 토로하며 영화 전체를 이끄는 준영의 나레이션은 자기 방어와 자조를 함께 내보이는 프루프록의 내적 독백과 겹쳐집니다. 또 하나 이 강의가 끝나자 마자 한 여학생이 따라 나와 준영에 대한 관심을 드러냅니다. 그 여학생을 바라보는 준영의 눈빛은 좀 복잡해 보입니다. 다소 도발적이기까지 한 그녀에게서 '수많은 연희들'의 과거를, 그녀의 미래에서 '수많은 연희들'의 모습을 읽은 건 아닐까요.(장시여서 일부만 소개합니다.)
see 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두 번 째 소개 되는 시는 존 단(John Donne)의 '벼룩(The Flea)' 인데, 이 시는 17세기 형이상학파 시(The Metaphysical Poetry)의 특징인 기발한 착상과 비유를 사용해서, '정조'를 지키려는 연인을 유혹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이 시가 소개되는 장면은 연희가 의사와 결혼한 직후입니다. 시간이 좀 흐르고 다시 만난 두 사람은 연희의 제안과 도움으로 준영의 독립된 공간을 만들고 '주말 부부'처럼 보이는 삶을 살게 되지요. 굳건한 '순결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을 담은 이 시가 인용되는 맥락은 연희의 이중생활이 가부장적 결혼제도에 대한 도전을 담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시 에서 남성 화자는 '그대와 나의 피'를 포식하여 배가 불룩한 벼룩 안에는 새 생명이 잉태되었으니, 벼룩은 "우리의 결혼 침상이자 결혼식을 올린 사원"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여자를 유혹합니다. 하지만 여자는 '허튼소리'라는 듯, 남자 눈 앞에서 벼룩을 손톱으로 눌러 죽이고, 손톱을 자주빛으로 물들입니다. 그에 질세라 남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Cruel and sudden, haste thou since
Purpled thy nail, in blood of innocence?
Wherein could this flea guilty be,
Except in that drop which it sucked from thee?
Yet thou triumph'st, and say'st that thou
Find'st not thy self nor me the weaker now;
'Tis true, then learn how false fears be;
Just so much honor, when thou yield'st to me,
Will waste, as this flea's death took life from thee.
잔인하고도 갑작스럽게, 그대는 벌써
무고한 피로 손톱을 자주빛으로 물들였단 말이요?
대체 이 벼룩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이오,
그대에게 빨아먹은 한방울의 피 말고?
하지만 그대는 뽐내면서 그대 자신이나
내가 그 때문에 더 약해지지 않았다고 말하는구려.
사실이요. 그러니 그 두려움이 얼마나 거짓인지 알기나 하시오.
그대가 내게 몸을 허락할 때, 소모되는 정조는
바로 이 벼룩의 죽음이 그대로부터 가져간 생명만큼이라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