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을 인류의 "오래된 미래"라 칭하는 저자 신영복이 본격적으로 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고 새롭게 다시 공부한 것은 감옥 안에서라고 합니다. 신영복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한지 20년 20일 만인 1988년 8월 15일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했는데, 이 책은 교양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고전은 시경, 서경, 초사,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와 같이 춘추전국시대의 제자 백가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무한 경쟁의 춘추전국시대의 당면과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나름의 최상의 해법을 담고있는 문안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전들을 재조명하는 저자의 관점은 "관계론" 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교환가치로 표현되고, 인간관계는 상품 교환형식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 및 자본축적의 역사의 모순에 맞설 해법이 동양적 구성원리에 있다고 보는 것이죠. 저자가 관계론의 관점에서 고전의 의미를 재조명하면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 가치가 '인성의 고양' 이라는 사실입니다. 책 서두에 그러한 사유의 토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경>에서는 '대상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시적 관점' 의 의의를 논하고, 나아가 오래된 시들이 담은 '현실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거시적 시각과 대담함'을 '우리가 처하고 있는 공고한 체계적 억압과 이데올로기적 포섭의 기제를 드러내야 하는 당면과제와 한번 쯤 연결 시켜볼 것'을 제안합니다. <주역>의 관계론에서는 '절제와 겸손이 관계론의 최고 형태'임을 확인 하고, 인간 관계론의 보고라 칭한 <논어>에서는 차이와 다양성의 존중을 통한 공존과 평화의 가능성을 읽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문건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장에서는 불교, 신유학, 대학, 중용, 양명학에 대한 논의도 접할 수 있습니다.
매 장마다 소개되는 흥미로운 예화들과 그에 대한 저자의 깊고 넉넉한 사유에 동참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라 생각됩니다. 지면상 두 가지 예화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예화들에 대해 각자 생각해보고, 저자의 '강의'는 이들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한번 찾아 보기를 권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고전은 시경, 서경, 초사,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와 같이 춘추전국시대의 제자 백가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무한 경쟁의 춘추전국시대의 당면과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나름의 최상의 해법을 담고있는 문안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고전들을 재조명하는 저자의 관점은 "관계론" 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교환가치로 표현되고, 인간관계는 상품 교환형식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 및 자본축적의 역사의 모순에 맞설 해법이 동양적 구성원리에 있다고 보는 것이죠. 저자가 관계론의 관점에서 고전의 의미를 재조명하면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 가치가 '인성의 고양' 이라는 사실입니다. 책 서두에 그러한 사유의 토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먼저 '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自己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을 키우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키우는 순서입니다.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는 것(成人之美)을 인仁이라 합니다.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세워야 한다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론이 확대되면 그것이 곧 사회적인 것이 됩니다.
이처럼 동양사상은 가치를 외부에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종교적이고, 개인의 내부에 두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개인주의적이 아닙니다. 동양학의 인간주의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인간을 배타적 존재로 상정하거나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두는 인본주의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하나이며 그 자체가 어떤 질서와 장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입니다. 그리고 인성의 고양을 궁극적 가치로 인식하는 경우에도 인간을 관계론의 맥락에서 개인주의의 좁은 틀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경>에서는 '대상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시적 관점' 의 의의를 논하고, 나아가 오래된 시들이 담은 '현실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거시적 시각과 대담함'을 '우리가 처하고 있는 공고한 체계적 억압과 이데올로기적 포섭의 기제를 드러내야 하는 당면과제와 한번 쯤 연결 시켜볼 것'을 제안합니다. <주역>의 관계론에서는 '절제와 겸손이 관계론의 최고 형태'임을 확인 하고, 인간 관계론의 보고라 칭한 <논어>에서는 차이와 다양성의 존중을 통한 공존과 평화의 가능성을 읽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문건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장에서는 불교, 신유학, 대학, 중용, 양명학에 대한 논의도 접할 수 있습니다.
매 장마다 소개되는 흥미로운 예화들과 그에 대한 저자의 깊고 넉넉한 사유에 동참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재미라 생각됩니다. 지면상 두 가지 예화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예화들에 대해 각자 생각해보고, 저자의 '강의'는 이들을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한번 찾아 보기를 권합니다.
<장자>의 '빈 배'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떠내려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비록 성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비키라고 소리친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치고 두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친다. 세번째는 욕설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까는 화내지 않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한비자>의 '탁과 발'
정나라에 차치리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기의 발을 본뜨고 그것을(度) 그 자리에 두었다. 시장에 갈 때 탁度을 가지고 가는 것을 잊었다. (시장의 신발가게에 와서) 신발을 손에 들고는 탁을 가지고 오는 것을 깜박 잊었구나 하고 탁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다시 시장에 왔을 때는 장은 이미 파하고 신발은 살 수가 없었다. (그 사정을 듣고) 사람들이 말했다. "어째서 발로 신어보지 않았소?" (차치리의 답변은) "탁은 믿을 수 있지만 내 발은 믿을 수 없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