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다시 시작 되었습니다. 아래 여러 글들에서 저마다 유익하고 건강한 시간을 보낸 모습들이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무더위의 끝을 알리는 듯, 가을을 예감케 하는 비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개강을 맞아 다소 어수선해 지는 마음들을 가다듬어 줄 듯 싶어, 이 책을 소개합니다.
《내려놓음》이라는 제목 앞에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 이라는 말을 써 넣은 저자 이용규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대학원을 졸헙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중동 지역학 및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가족 모두가 몽골 선교사로 헌신, 한국의 오병이어 선교회가 몽골 울란바토르에 설립한 '이레교회'를 담임목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 소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어려운 하버드 시절에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체험하고, 선교와 목회 활동을 하면서 거듭 경험하게된 '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에 대한 저자의 신앙고백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종교의 울타리에 머물지 않고, 읽는 이들에게 바삐 혹은 기계적으로 달려온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고, 마음을 새롭게 들여다 보게하는 온유하면서도 울림이 강한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내려놓는 삶"을 한마디로 '온유함을 이루는 삶' 이라 요약하고 '온유'에 함축된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저자에게 "내려놓음''은 "나를 비우고 하나님께 맡기는 삶의 결단"을 뜻합니다. 문제에 직면하는 순간순간 "하나님은 왜 내려놓으라고 하실까?"라는 의구심과 물음을 반복하면서, 저자는 "왜냐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다. 내려놓을 때 주어지는 가장 좋은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강이다"는 깨우침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몽골을 사역지로 결정하게 되고, 그 이후의 삶을 "내려놓을 수록 가득해지는 천국 노마드(유목민)"라 지칭합니다. 자신과 가족의 일상적 삶을 예화로 삼으며 저자가 전해주는 "가장 좋은 것을 붙들기 위한 내려놓음" 들 중 '죄와 '판단'의 짐을 내려놓는다'는 대목을 읽어 보겠습니다.
꼭 종교적인 언어로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외에도 '결과를 예상하는 경험과 지식 내려놓기', '명예와 인정받기의 욕구 내려 놓기' 등 우리의 의표를 찌르고 묵상하게 하는 대목들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내려놓음》이라는 제목 앞에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 이라는 말을 써 넣은 저자 이용규는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와 대학원을 졸헙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중동 지역학 및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가족 모두가 몽골 선교사로 헌신, 한국의 오병이어 선교회가 몽골 울란바토르에 설립한 '이레교회'를 담임목회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자 소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어려운 하버드 시절에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체험하고, 선교와 목회 활동을 하면서 거듭 경험하게된 '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에 대한 저자의 신앙고백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러한 종교의 울타리에 머물지 않고, 읽는 이들에게 바삐 혹은 기계적으로 달려온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고, 마음을 새롭게 들여다 보게하는 온유하면서도 울림이 강한 메세지를 담고 있습니다.
저자는 "내려놓는 삶"을 한마디로 '온유함을 이루는 삶' 이라 요약하고 '온유'에 함축된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우리는 흔히 온유한 자를 미약하고 온순하며 저항하지 못하는 자로 이해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유한 자이시지만 바리새인이나 성전 지도자를 향해 강하게 꾸짖기도 하셨고 전통과 관습의 압박, 세상 유혹이나 권력자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모습을 보이셨다. 이것이 진정한 온유한 자의 모습이다.
'온유'의 그리스 원어는 '통제된 힘'이라는 함의를 가진다. 예를 들면 몽골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말의 경우, 관광지에 있는 비루먹고 늙은 말이 힘없이 터벅터벅 걷는 모습이 아니라 유목민이 길들인 강인한 말이 날렵하게 달리는 모습을 연상하면 된다. 힘이 넘치지만 말을 잘 다루는 기수의 조정에 따라 통제되어 기수가 고삐를 트는 방향으로 힘을 분출하는 것이 온유이다.
저자에게 "내려놓음''은 "나를 비우고 하나님께 맡기는 삶의 결단"을 뜻합니다. 문제에 직면하는 순간순간 "하나님은 왜 내려놓으라고 하실까?"라는 의구심과 물음을 반복하면서, 저자는 "왜냐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다. 내려놓을 때 주어지는 가장 좋은 것은 세상이 줄 수 없는 자유와 평강이다"는 깨우침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몽골을 사역지로 결정하게 되고, 그 이후의 삶을 "내려놓을 수록 가득해지는 천국 노마드(유목민)"라 지칭합니다. 자신과 가족의 일상적 삶을 예화로 삼으며 저자가 전해주는 "가장 좋은 것을 붙들기 위한 내려놓음" 들 중 '죄와 '판단'의 짐을 내려놓는다'는 대목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정죄를 경계하시면서 판단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판단 받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판단하는 사람을 그 판단의 흉악한 결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해서이다. 즉, 우리가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판단이 가져다 주는 크나큰 영적 해악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다.
아무리 의로운 쪽에서 하는 판단이라도, 판단하는 순간 우리 마음 속에 상처가 생긴다. 그리고 마음이 단단해진다. 문제는 우리 마음에 상처가 생길 때, 죄를 짓는 것은 상처 받는 쪽이라는 사실이다. 상처 준 사람은 대부분 상대방의 마음에 걸림이 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넘어간다. 마음에 생채기가 난 사람은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을 계속 마음에 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악한 영은 대부분 분노나 미움으로 그 상처를 확대시킨다. 판단은 분노나 미움을 촉발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의와 불의, 그리고 지혜와 무지를 분별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분별과 판단은 다르다. 분별은 영적인 지혜에서 오는 것인 반면, 판단은 분노의 영과 미움의 영을 불러온다. 분별은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상대방을 보는 것이다. 판단은 나의 의(義)의 기준을 가지고 상대방을 재는 것이다. 판단의 영에 지배를 받게 되면 잘못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되 책임을 지려하지 않는다. 주위를 비난하지만 용서와 화해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판단의 영은 판단하는 사람의 영혼을 무디게 만들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뜨린다.
꼭 종교적인 언어로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외에도 '결과를 예상하는 경험과 지식 내려놓기', '명예와 인정받기의 욕구 내려 놓기' 등 우리의 의표를 찌르고 묵상하게 하는 대목들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