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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Posted by 김옥엽 문학 : 2007/08/0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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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이 읽은 우리시'


여러분은 어떤 색을 좋아하세요? 저는 색채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인데, 개인적으로 보라색을 보면 저절로 눈이 가고 마음이 갑니다...사실 이 책도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는데,  저자 역시 "언제부턴가 제 시야를 지배하고 있는, 또는 제 마음 깊이 자리잡고 있는 색이 있다면, 그것은 '보랏빛'입니다"라고 토로하네요.

이 책은 시인이자 조선대문예창작과 교수이기도 한 저자 나희덕이 우리 시들을 꼼꼼하게 읽고 쓴 일종의 '비평적 글쓰기' 모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책의 구성에 대해, 1부에서는 자유롭게 시에 관한 생각을 풀어낸 글들을 모았고, 2부에서는 자연, 풍경, 여성성, 생태주의, 전통의 개념을 중심으로 우리 시의 흐름을 짚어보고자 했고, 3부에서는 습작기부터 즐겨 읽고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시인 또는 시집에 대한 작품론( 정현종, 김지하, 강은교, 고정희, 김혜순,장정일, 김기택, 최두석, 이홍섭, 장철문)이라고  정리합니다.  

여기에서는 1부에 수록된 표제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를 소개해 볼까합니다. 책 머리에서 저자는 제목에 함축된 의도를 '보랏빛'은 경계(境界)의 색이라는 말로 시사합니다. "보랏빛의 탄생이 그러하듯이 양자 사이의 부단한 진자운동을 동해서 역동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시를 쓸 때 늘 염두에 두었답니다.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글에서 저자는 보라라는 색 구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깐딘스끼(Kandinsky)는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형태언어와 색채 언어에 관해 재미있는 착상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는 보라를 "냉각된 빨강"이라고 부르더군요. 같은 빨강이라도 노랑에 의해 인간에게로 더 가까이 오면서 생겨나는 색이 주황이라면, 보라는 빨강이 파랑에 의해 인간에게서 멀어져감으로써 생겨난 색입니다. 그래서 보라색 내부에서는 빨강의 뜨거움과 파랑의 차가움이 늘 갈등할 수 밖에 없고, 그것은 나아가 탄생과 죽음, 현실과 이상,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 여성성과 남성성, 감정과 이성 사이의 갈등으로까지 확대 시켜볼 수 있겠지요. 중간 색들이 갖는 불균형, 소멸과 죽음에 대한 경사, 슬프고 병적인 심리, 석탄 찌꺼기처럼 연소되고 남은 재의 이미지...보랏빛은 이런 것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떠세요? 보라가 경계 색으로 갖는 이런 이미지들에 대해 동의하세요? 깐딘스끼는 다시 질문을 던집니다. "주황은 어디에서 시작하고, 노랑과 빨강은 어디에서 끝나는가. 빨강과 파랑을 엄밀하게 갈라놓는 보라색의 한계는 어디에 있는가. 보라색은 라일락꽃빛으로 번지려는 경향이 있다. 이 라일락꽃빛은 어디에서 끝나고 보라색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표제어를 빌려온 이 화가의 말을 저자는 "보라 속에 들어 있는 수많은 '경계들'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 보라는 권유"로 받아들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보랏빛에 이끌린 것일까. 이제 와서야 저는 생각해 봅니다. 그건 어쩌면 지난 몇 년간 저를 지나간 많은 일들이 빨강과 파랑의 극명한 대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요. 역설적으로 보랏빛의 '균형감각' 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찢겨진 감정을 스스로 쓰다듬어 갈등을 해소하여는 심리는 마치 빨강과 파랑의 제 고유색을 버리고 서로 한몸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작용과도 비슷하니까요. 그렇다면 보랏빛은 단순히 병적이거나 모호한 색이 아니라, 상처를 넘어서려는 '치유력'과 더불어 분열을 넘어서려는 '역동성'을 지닌 색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저자는 고흐는 선명한 노랑으로, 쎄잔느는 풍부한 음영을 거느린 초록으로, 뭉크는 전율하는 빨강으로 떠올립니다. 음악에서 악기나 사람이 내는 음색을 색채로 비유할 수 있고, 문학 작품에서 한 가지 색채가 수많은 의미나 이미지를 대신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데, 여러분의 마음 속 색채는 무엇인지요?


                                                Kandin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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